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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tea)! 차(tea)! 차(tea)!
202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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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지만, 때론 돈이 사랑을 증명할 때도 있습니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죠. “사실은 돈을 옷 사는 데 쓰고 자동차 사는 데 쓰면서,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책 안 좋아하는 거거든요.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 사는데 돈을 써요.” 그렇죠, 내 지갑이 홀쭉하다 해도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한 돈은 아깝지 않은 마음, 모두들 공감하실 겁니다.
맘 쓰리지만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 볼까요? 자신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죠. 저의 경우에는 차(tea)입니다. 3년 전부터 용돈 중 상당 부분을 차에 쓰고 있더군요. 여행을 가서도 차만 사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 (그리고 돈)을 쏟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네요. 지금도 차와 찻잔, 티푸드 접시 정보를 찾아보고 매일 배우는 중이지요.

여러분은 차를 좋아하나요? 건강상 이유로 커피를 멀리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분들이 차보다는 커피를 선호하시는 듯합니다. 커피 수혈도 필요하지만, 커피의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시죠. 저도 그랬습니다. 오래전부터 차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차를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저의 경험에 근거해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01. ‘커피 게 섰거라’… 우리나라에서 차가 대중화되기 어려웠던 5가지 이유

첫째, 차에 대한 첫 경험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에 추억의 ‘크라제’에서 알바를 했었는데요, 가장 많이 나갔던 음료는 립톤 아이스티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 달달함이 홍차의 맛이라고 생각했죠. 어느 날 한 직원분이 그건 진짜 차가 아니라며 립톤 티백을 우려 줬습니다. 지금 마시면 달랐을 텐데, 달콤한 홍차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그 홍차가 너무 썼던 것입니다. 그렇게 씁쓸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맛있는 커피보다 맛있는 차를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커피 전문점에서 티 백에 담은 차를 한 두 종류 구비해 놓죠. 간혹 차를 시키기도 했는데, 만족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유는 명확합니다. “몇 분 있다가 티백을 빼 주세요”라는 가이드를 해 주는 커피 전문점은 거의 없을 겁니다. 차는 우리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맛 차이가 벌어지는데, 그게 모두 지켜지지 않았던 거죠.
세 번째, 빈속에 차를 마시면 메슥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동량의 커피와 차를 비교하면 차에 카페인이 더 많지만, 한 잔의 커피와 차를 놓고 본다면 커피를 마실 때 더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한 잔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커피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카페인 양으로만 본다면, 커피가 더 메슥거려야 하는데 워낙 많이 마시다 보니 몸이 그냥 적응했나 생각해 봅니다. 차는 아직 아니고요.
네 번째, 차는 비쌉니다. 특정 국가와 체결된 자유무역협정(FTA) 여부에 따라 낮아질 여지는 있지만, 커피 원두는 기본 관세율이 2-8% 수준인데 반해, 녹차와 홍차의 기본 관세율은 40%라고 합니다. 이에 상당수의 차 애호가 분들은 차 문화가 발달된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에서 구매 대행, 직구를 통해 소량의 차를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는 특히 시간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음료입니다. 차의 맛을 끌어올리려면, 차를 우리는 ‘우림 팟’과 우린 차를 내가는 ‘서빙 팟’, ‘찻잔’을 모두 뜨거운 물로 데워 두고, 차 그램 수를 재고, 차에 적합한 적정 온도와 적정 량의 물을 부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우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헉헉… 참 많죠…) 바쁜 평일 아침에는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맛있는 차를 맛본 저는 차의 매력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맛있는 차가 티 백으로 많이 만들어져, 그 접근성이 더 좋아지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오늘은 어떤 차를 어떤 잔에 마실까? 어떤 간식을 곁들일까? 하는 그 설렘이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차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차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는 가향차와 찻잔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02. 그렇게 민초단이 된다 – 하니앤손즈 ‘초콜릿민트’ (Harney and sons, Chocolate Mint)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 민초냐 반민초냐? 입맛 월드컵을 연다면 꼭 들어갈 문제가 아닐까요? 그만큼 호불호가 분명한 식품 중 하나가 바로 초콜릿 민트입니다. 저는 주변에서 주면 먹지만, 따로 사 먹지는 않는 어정쩡한 중간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초콜릿 민트차는 “민초단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초콜릿민트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습니다.
잎 차에서는 초콜릿 향기가 많이 나서 초콜릿이 지배적인가? 싶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린 후 한 모금 마시면 처음 느껴지는 향기는 부드러운 바닐라. 그다음은 주인공 민트 등장. 아 이런 맛이 진짜 민트인가 싶을 정도로 상쾌한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초콜릿이 스르륵 나오는데 과하지 않게 이 한 모금을 마무리해 줍니다. 바닐라-민트-초콜릿의 삼중주가 아름답습니다.
하니앤손즈 홈페이지에 기재된 설명도 저의 느낌과 거의 유사했습니다. “초콜릿 민트는 페퍼민트 잎의 신선한 향과 천연 초콜릿 향이 나는 맛있는 중국 홍차입니다. 절묘한 달콤함이 있죠, 이 차를 시도한 당신은 사랑하는 쿠키 상자의 맛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차는 또한 거부하기 어려운 식후 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동안 민초에 대해 가져왔던 막연한 오해는 풀렸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맛이 있고, 그 맛의 매력을 알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꼭 민초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민트를 싫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맛있다 하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요? ‘민초101’과 같은 이 차를 통해, 새로운 맛에 도전할 용기를 또 얻게 되었습니다.
03. 지지 않는 꽃송이, 아스러진 영광 – 웨지우드 ‘원더러스트 자스민블룸’ (Wedgwood Wonderlust Jasmine bloom)
클래식하면서 모던하게. 놀랍게도 이 모순을 충족하는 찻잔이 있습니다. 2018년부터 출시된 웨지우드 원더러스트(Wedgwood Wonderlust) 컬렉션이죠. 18세기에 디자인된 패턴들을 웨지우드에서 구현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아시아와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접한 신 문물과 문화가 여러 패턴으로 형상화되어 퍼져나갔는데, 웨지우드가 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설명입니다.
경이롭다는 뜻의 Wonder와 욕망이라는 의미의 lust가 결합된 ‘원더러스트’. 어쩌면 영국인들의 욕망과 대영제국의 향수를 고상하게 포장한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각국의 자연환경과 자원, 문화를 살펴보고,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삼을지 궁리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19세기부터는 영국을 비롯한 서강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식민지 곳곳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브랜드 명에 어떤 유래가 있든 간에 당시 영국 귀족들이 느꼈을 신 문화, 특히 아시아 국가에 대한 경이로움이 오롯이 담겨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원더러스트 찻잔은 메나쥬리, 사파이어가든, 에메랄드포레스트, 골든패럿, 애플블라썸, 미드나잇크레인, 피오니 다이아몬드, 프림로즈, 크림슨 쥬얼, 자스민블룸, 핑크로터스, 워터릴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 예뻐서 절로 감탄이 나오네요.

저는 그중 자스민블룸(Jasmine bloom)’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개봉하자마자, 화사로움이 가득 전해졌습니다. 찻잔과 찻잔 받침 모두에 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특히 받침의 꽃무늬가 아주 인상적인데, 네 개의 꽃무늬가 모두 다르네요. 큰 꽃과 작은 꽃을 번갈아 배치해서 오래 보아도 과하지 않고 조화롭습니다. 옆모습도 앙증맞습니다. 밑 굽이 있어서 우아한 굴곡이 두드러지죠.

그리고 이 찻잔의 진가는 찻물이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납니다. 꽃잎이 피어나거나 떠오르는 것처럼 그 생생함이 살아나기 때문이죠. 영국의 화려한 과거이자 식민지의 고통을 담은 이름은 서글프지만, 이 찻잔의 아름다움은 매혹적입니다. 꽃은 지지만, 이 찻잔의 꽃은 지지 않습니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아스러진 과거의 영광을 담은 ‘자스민블룸’입니다.

04.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이어지는 날들 – 루피시아 ‘메르시 밀 포아’ (Lupicia Merci Mille Fois)
향긋한 과일 바구니를 선물 받은 듯한 차가 있습니다. 바로 루피시아의 ‘메르시 밀 포아’입니다. Merci Mille Fois는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천 번의 감사’인데, Mille Fois 자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해서 ‘매우 고맙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차 향을 맡아보고 차 잎도 살펴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우선 향을 맡아볼까요? 딸기, 복숭아, 라즈베리 등 달콤한 과일 향기가 가득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눈으로 마신다고 하죠, ‘메르시 밀 포아’가 바로 그렇습니다. 홍차에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분홍색의 꽃잎이 가득해요. 루피시아 웹사이트에 따르면, 꽃다발의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고마운 지인은 물론 매일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는 설명입니다.

저는 ‘메르시 밀 포아’를 마실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앤의 대사입니다. ‘행복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라기보다는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져 목걸이가 되듯,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이어지는 날들’이라는 것이죠. 매일 차 한잔과 함께 하는 그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저를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05.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자, 지금까지 차에 대한 저의 경험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결국 삶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최대한 조금 할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해 봐야 아는 거죠. 차(tea)도 좋고 뜨개질도 좋고 프라모델도 좋고 뭐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맘에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