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정보
전문화된 보안 관련 자료, 보안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차세대 통합보안관리 기업 이글루코퍼레이션 보안정보입니다.
딥시크가 쏘아 올린 작은 공…다음 다윗은 누구일까
2025.04.02
19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는다. 누가 봐도 예측 가능한 결과일지라도 다윗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왜 압도적인 힘과 기술, 자본을 보유한 골리앗 대신, 작고 약해 보이는 다윗에 열광할까? 100명, 1000명, 아니 10만 명의 다윗 중 누군가는 골리앗의 허를 찌르며 판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1월 또 하나의 다윗이 탄생했다. 저비용 인공지능(AI) 모델을 선보인 중국 AI기업 ‘딥시크(DeepSeek)’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중국 내 고성능 그래픽 처리장치(GPU) 수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저사양 H800 칩을 사용해, 오픈 AI의 챗GPT에 적용된 거대언어모델(LLM)인 GPT-4와 대응하거나 일부 작업은 더 나은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논란은 후술 하겠지만, 딥시크가 ‘고성능 칩이 AI 성능을 좌우한다’는 업계 통념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성능 AI 개발은 거대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에너지를 보유한 미국 빅테크만이 할 수 있다는 가정을 깨부수고, AI 개발의 접근 가능성 및 하드웨어 요구사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즉, 딥시크는 AI 판을 흔드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했다.
01. 메기와 같은 게임 체인저의 등장… 누가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것인가?
딥시크와 같은 게임 체인저의 등장은 사실 낯설지 않다. 핀란드의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가 대표적이다. 이케아는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자재 품질 또는 가격을 높이는 대신 가구 유통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던 조립과 운송 과정을 빼 버렸다. 가구 자재를 납작한 상자에 포장한 뒤, 소비자가 가지고 가 직접 조립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케아의 모델은 전 세계 가구업계에 확산되었다.
이케아의 성공 뒤에는 합리적 소비를 희망하는 20-30대 미국인에 대한 관찰이 있었다. 그들은 유럽 문화를 선망하지만, 고급스러운 가구를 구매할 의사는 적다. 거주지 변경이 빈번하고 이동 거리도 멀기 때문이다. 높은 인력 서비스 비용도 영향을 미친다. 직접 이사를 하므로 큰 부피와 무게의 가구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이케아는 그들의 생활양식과 생각을 꿰뚫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이는 하버드 경영대 교수였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1990년 대 소개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과 맞닿아 있다. 크리스텐슨은 업계 선도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여 고성능 및 고가에 집중하는 대신, 신생 기업은 이들이 간과한 틈새 및 소외 시장을 겨냥한 뒤 순차적으로 고급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기존 선도 기업의 위치를 위협하는 파괴적 혁신을 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적 혁신’은 고성능 GPU 의존도를 높이는 대신 알고리즘 차원의 효율화를 꾀한 딥시크의 행보와 부합한다. 기존의 AI 모델을 쫓기보다는 AI모델의 정보 처리 과정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모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MoE)’과 ‘멀티헤드 잠재 어텐션(MLA, Multi-Head Latent Attention)’, 그리고 ‘증류(Distillation)’ 기술이 있었다.
02. 딥시크의 혁신 기술… 진실인가 과장인가?
‘전문가 혼합’ 방식은 첼로,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과 한 명의 지휘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유사하다. 일반적인 거대 AI 모델은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천재적인 능력을 보유한 단 한 명의 연주자와 같다.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이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축된다. 모든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고 항상 활성화되어 있어야 하므로, 연산량과 전력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딥시크의 오케스트라는 여러 개의 소형 신경망 (전문가 모델)들이 담당 분야에만 집중해 학습을 수행하고. 필요시에만 활성화되도록 구성되었다. 전문가 모델 간 정보 교환이 어려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연주자 간 조정을 맡는 지휘자, ‘일반 모델(Generalist System)’도 존재한다. 즉, 전문가들이 각자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되, 필요할 때만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멀티헤드 잠재 어텐션’도 추론 속도와 메모리 사용량을 개선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영화의 예고편과 같이, 입력된 정보 중 유의미한 내용만 추려내 요약 및 저장하고, 필요시 원래의 모습대로 되살리는 기술이다. 모든 장면을 통째로 저장하는 것과 달리, 핵심 정보는 상세하게 그리고 부차적인 정보는 요약해 처리하므로 질문과 답변 양을 늘리고 응답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논란의 ‘증류’ 기술이 있다. 증류는 다른 AI모델의 출력 결과를 활용해 학습하는 방식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딥시크가 증류 프로세스를 사용해 선두업체들이 개발한 고성능 모델의 답변을 이용해 자사 모델을 학습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딥시크가 직접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기존 모델이 풀어놓은 정답을 찾아 훈련시키는 식으로 시간과 비용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기술과 더불어 딥시크가 밝힌 개발 비용이 과장되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 반도체 컨설팅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딥시크가 AI 모델 개발에 투입한 실질적인 총 훈련비용은 5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허사비스 CEO는 ‘전체 비용의 일부인 최종 훈련 부분의 비용만 공개한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과학적 진보 없이 이미 알려진 기술을 사용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증류 기술 의혹과는 별개로, 딥시크의 등장이 AI 개방성을 견인했다는 견해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딥시크 등장은 AI 발전이 기존 컴퓨팅 기술 발전과 유사하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능은 향상되고 비용은 낮아지는 패턴을 보여준다’며 ‘궁극적으로 모든 AI 모델이 상품화됨에 따라 소비자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03. 낮아진 AI 모델 개발 접근성… AI 민주화 시대 열리나? 보안 역시 핵심 열쇠가 될 것
딥시크의 등장이 ‘AI 모델의 경제성과 개방성’이란 화두를 던진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거대 AI 기업의 뒤를 쫓던 신생 기업들은 기존의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고성능 GPU에 대한 의존 없이도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즉 AI 모델 개발은 더 이상 선도기업들만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AI 서비스를 선보이려는 시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훈련 및 추론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증류’ 기술의 확산 역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픈AI 는 추론모델의 사고과정(CoT) 공개 가능 여부에 대해, 딥시크의 AI 모델이 큰 역할을 했다며 더 유용하고 자세한 버전을 공개하겠다는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CoT 공개가 경쟁적인 증류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사용자들이 이를 원한다는 점도 알고 있으므로 균형을 찾기 위한 적정선을 찾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거대 AI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100을 투자해서 1000 성능을 낼 것이냐 (선두 기업)’, 아니면 ‘10을 투자해서 100 성능을 낼 것이냐(다른 기업)’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AI의 효율성과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AI 사용이 급증하면서 초고성능AI와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을 갖춘 저비용 AI가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MS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제번스의 역설’을 언급하며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이 AI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번스의 역설’은 경제학자 제번스가 1865년 당시 주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의 매장량 고갈 문제를 제기하며 내놓은 개념이다. 석탄 연료 효율성을 높인 증기기관 발명에 따라 석탄 소비가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증기기관 사용이 확산되면서 석탄 소비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딥시크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역시 유사한 의견을 내놓았다. 효율성 높은 AI 모델 등장에 따라, GPU에 대한 수요는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인 구글, MS 등이 대규모 AI 투자 계획을 밝힌 점, 전 세계적으로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는 ‘소버린(주권) AI’ 전략 개진에 속도가 붙은 점 역시 주장에 힘을 보탰다.
다만,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 확산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정보보안이다. 2월 초 대다수 정부 부처가 딥시크 접속을 차단한 것에 이어, 딥시크 앱 신규 다운로드가 중단되었다. 개인정보 수집 범위가 광범위하고, 수집된 데이터가 중국 서버에 저장되며, 중국 정부의 법률에 따라 관리될 수 있는 등 과도한 사용자 정보 수집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주요 사유였다.
딥시크의 보안 취약점 및 데이터 처리 방식도 위협 요소로 지목되었다. 사용자의 기기 정보와 입력 데이터가 암호화되지 않은 상태로 전송되어 중간자 공격 (Man-in-the-Middle Attack)에 노출될 수 있는 점, AI 모델에게 허용된 행동의 경계를 벗어나게 지시하는 탈옥 공격 (jailbreak)에 취약한 점 등이 지적되었다. 딥시크 서비스는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선·보완이 이루어진 후 재개될 예정이다.
다시 말해, AI 모델이 시장 내 자리 잡기 위해서는 AI 모델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보장함은 물론 이 모델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보안 체계 구현이 필수적이다.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 등장은 그간 IT투자 순위에서 밀렸던 정보보안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은 기술과 비용은 물론 보안에 큰 비중을 두고 AI 모델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04. 딥시크는 시작에 불과했나? 중국의 AI 굴기
기술과 산업을 넘어 딥시크가 불러온 지정학적 긴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딥시크는 AI 시장을 주름잡는 오픈AI와 엔비디아는 물론 미국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즉, 미국과 중국 간의 본격적인 AI 경쟁 불꽃을 일으킨 것이다. 딥시크가 트럼프 미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당일에 새 버전을 공개한 것 역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고성능 칩 수출 규제가 중국 AI 업계에 기회가 되었다는 점 역시 괄목할 만하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기술 자립 정책에 발맞춰,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AI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 모색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방을 넘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국 내 AI 투자와 인재 풀이 있다.
중국은 통섭형(Consilience) AI 인재를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이 확보한 나라이다. 중국 정부는 2018년 이후 학부에 2000개 이상의 AI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관련 박사를 매년 8만 명씩 배출하고 있다. 딥시크를 설립한 량원펑(梁文峰, Liang Wenfeng) 역시 중국 저장대학교에서 전자정보공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뒤,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AI 기반 금융 투자를 주도했던 금융업계 이력이 있다.
더 무서운 점은 딥시크가 그런 움직임 속에서 배출된 하나의 기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에서도 중국의 기업들이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다. 화웨이, 샤오미를 비롯한 여러 중국 기업들은 기업용 인프라와 소비자용 기기를 아울러 변화를 주도하는 AI 기반 기술을 구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05. 딥시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다음 다윗은 누구일까
지금까지 딥시크가 불러온 기술적, 산업적, 국가적 영향에 대해 짚어보았다. AI 모델의 비용 효율성 향상에 따라 AI 모델을 개발하고자 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AI의 대중화와 상품화에도 속도가 붙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AI 모델을 둘러싼 보안성 확보 역시 AI 성장의 핵심 동인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AI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100년간은 서양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25년 전 한 교수님의 얘기다. 딥시크를 둘러싼 논란은 많다. 그럼에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공을 쏘아 올린 딥시크의 저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래 AI 생태계의 흐름을 제시하는 이 변곡점 앞에서, 우리 역시 다윗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응원해 본다. 희망의 공을 몇 번이고 쏘아 올려 본다.